삼신할머니는 한국 민속신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주로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신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각 지역에 따라 전승의 종류와 특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삼신할머니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에서 출산을 도우며, 산모와 갓난아기를 보호하고, 자식 갖기를 원하는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하는 신으로 믿어집니다.
성격 및 특징
삼신할머니는 인간의 탄생과 수명, 복록과 건강 등을 관장하는 중요한 신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로 인해 삼신사상은 한국 민족의 지킴이로 간주되며, 우리 민족은 특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삼신할머니를 통해 미지근하고 친근한 신앙을 가지며,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와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중심인물입니다.
생김새
삼신할머니는 광대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지역에 따라 상징과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삼신할매', '제왕할매', '제왕님네'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할머니의 모습으로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삼신할머니의 믿음과 함께 한반도 곳곳에 뿌려져 있으며, 무속이 갖는 ‘민중들’의 지속적인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빛 비단 저고리, 흰 누에고치만으로 실을 켜서 짠 명주 바지, 짙고 붉은 비단 홑단치마, 엷은 남빛 명주 속옷을 입고 등장했다는 이야기로 삼신할머니의 특징적 복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별 전승
제주도
동해용왕이 서해용왕 딸과 혼인을 했다. 마흔이 다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근심 끝에 점을 쳤다. 명산대찰에 정성을 들이면 자식을 얻는다 해서 동해용왕은 관음사에 가 백일기도를 정성껏 올렸다. 정성이 닿았는지 얼마 안 있어 용왕부인은 태기가 있었다. 아들을 바랐지만 선녀처럼 예쁜 딸이 태어났다.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딸자식인들 어떠냐며 극진히 귀하게 키웠다. 그러나 너무 호호 모셔가며 키운 탓에 딸아이는 여러 가지 죄를 지었다. 한 살 때는 어머니 젖가슴을 때린 죄, 두 살 때는 아버지 수염을 뽑은 죄, 세살 때는 널어놓은 곡식을 흩뿌린 죄, 네 살 때는 조상 불효, 다섯 살 때는 친족 불화…, 아홉 살 때는 말 모르는 짐승을 때리는 죄를 지었다. 죄목이 점점 많아지자 용궁사람들의 원성이 높아만 갔다. 아버지 동해용왕은 이 딸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딸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안 용왕부인이 남편을 달랬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어찌 죽일 수가 있습니까? 그러지말고 석함 속에 가두어 동해바다로 띄워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일이 진행되어 가자 용왕의 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머니, 나 인간 세상에 가서 무슨 일을 하며 살란 말입니까?” “그곳에 생불왕(生佛王:인간을 잉태시켜 낳게 해주고 길러주는 신)이 없으니, 생불왕으로 들어서서 얻어먹고 살 거라.” “어떻게 잉태시키고 어떻게 낳게 하는 겁니까?” “아버지 몸에 하얀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아홉 달…” 방법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용왕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용왕의 딸은 석함 속에 가두어진 채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져 버리고 말았다. 석함에는 ‘임박사가 열어보라’는 글자가 씌어졌다. 동해바다로 띄워진 석함은 물 아래로 삼년, 물 위로 삼년을 떠다니다가 처녀물가에 닿았다. 석함은 임박사에게 넘겨졌다. 임박사가 발로 툭 차자 굳게 잠겨있던 자물쇠가 저절로 열렸다. 석함 속에는 꽃처럼 어여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너는 귀신이냐, 사람이냐?” “나는 동해용왕의 딸입니다. 인간에 생불왕이 없다고 해서 생불왕이 되려고 왔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부부가 쉰이 지나도 아이가 없으니 생불을 주는 게 어떻겠느냐?” “그럽시다.” 동해용왕 딸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임박사 부인에게 생불을 주었다. 그러나 열 달 만삭이 되자 딱한 일이 생겨버렸다. 아버지의 호령 때문에 어디로 해산을 시켜야 하는지를 어머니에게 미처 못 들었던 것이다. 산모는 열두 달을 넘겨버렸다. 뱃속의 아이보다 산모가 사경에 이르게 되었다. 동해용왕 딸은 어떻게든 해산을 시켜보려고 은가위로 산모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솜솜이 끊고 아이를 꺼내려 했다. 그야말로 큰일이 났다. 산모와 아이를 모두 잃게 된 것이다. 겁이 난 동해용왕 딸은 임박사의 집을 빠져나와 처녀물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버드나무 아래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어렵게 얻은 아이는 물론 부인마저 잃게 된 임박사는 그 애끓는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생각 끝에 금백산에 올라가 칠성단을 차려놓고 요령을 흔들면서 옥황상제에게 호소했다. 임박사의 요령소리를 들은 옥황상제는 지부사천대왕을 불러 연유를 듣고, 인간세상의 생불왕으로 들어설만한 자를 추천하라고 했다. “인간 명진국(수명이 긴 나라) 딸이 병인년 병인월 병인일 병인시에 태어났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고 일가친족과 화목하고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 내를 건너게 하는 공덕을 쌓았으니, 그 아가씨를 생불왕으로 들여세우면 어떻겠습니까?” 옥황상제는 곧 금부도사(禁府都事)를 내려 보내 명진국 딸을 데려오도록 했다. 명진국 딸이 오자 옥황상제는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야단을 쳤다. “총각머리 등에 진 아가씨가 어찌 대청 한 가운데로 들어오느냐?” “남녀 구별이 있는데 어쩐 일로 총각머리 등에 진 처녀를 부릅디까?” “영리하고 당차구나. 그만하면 인간 생불왕으로 들어설 만 하구나.” 옥황상제는 두 말 없이 생불왕으로 허락했다. “옥황상제님. 어리고 미욱한 소녀가 어찌 생불을 주고 환생을 줍니까?” “아버지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살 살려 석 달, 벼 살려 석 달, 열 달 채 못 채워서, 어머니 느슨한 뼈는 당기고 빠듯한 뼈는 늦추어서 열 두 궁문(宮門)으로 낳게 해라.” 그렇게 해서 명진국 딸은 물색 명주 속곳에 하얀 바지, 남색저고리에 자주색 치마를 입은 눈부신 차림으로 생불왕이 되어 사월 초파일에 인간세상에 내려 왔다. 명진국 딸이 처녀물가에 이르렀는데, 수양버들 아래서 웬 처녀가 슬피 울며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동해용왕의 딸이라는 처녀는 생불왕이 되려고 귀양왔다가 딱한 사정이 있어 울고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옥황황제의 분부를 받은 인간 생불왕입니다.” 명진국 딸의 딱 부러진 말을 들은 동해용왕 딸은 화를 벌컥 내며 일어서더니, 두말 않고 명진국 딸의 머리채를 감아쥐며 마구 때렸다. 명진국 딸은 차분하게 제안을 했다.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옥황상제에게 가서 가려달라고 하는게 어떻겠느냐?” 두 처녀는 옥황상제에게 올라갔다. 난처해진 옥황상제는 시험을 해보기로했다. “꽃씨를 하나씩 줄 테니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 모래밭에 심어라. 꽃이 피는 걸 보고 생불왕을 정하도록 하겠다.” 두 처녀는 저마다 모래밭에 꽃씨를 심었다. 움이 돋아나고 가지가 뻗어갔다. 옥황상제가 꽃을 심사하러 나갔다. 동해용궁 딸의 꽃은 뿌리도 하나고, 가지도 하나고, 순도 하나가 겨우 돋아나 있었다. 명진국 딸의 꽃은 뿌리는 하나지만, 4만5천6백 가지가 뻗어나고 있었다. 옥황상제의 분부가 내려졌다. “동해용왕 딸의 꽃은 이울어져가니, 죽어 저승에 간 아이의 영혼을 차지하는 저승할망으로 들어서라. 명진국 딸의 꽃은 번성하고 있으니 생불왕으로 들어서라” 화가 난 동해용왕 딸은 명진국 딸의 꽃가지 하나를 오도독 꺾어 가졌다. 명진국 딸이 대들었다. “남의 꽃가지는 왜 꺾어 가지느냐?”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면 내가 경풍(驚風), 경세(驚勢) 따위의 온갖 병에 걸리게 하겠다.” 명진국 딸은 어떻게든 동해용왕의 딸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정하듯 타일렀다. “아기가 태어나면 너를 위해 좋은 음식을 차려줄 테니 서로 좋은 마음을 갖자.” 그렇게 하기로 하고 두 처녀는 작별잔을 나눈 뒤 헤어졌다. 동해용왕 딸은 저승으로 올라갔다. 생불왕이 되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명진국 딸은 우선 금백산 아래 비자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정자나무로 도리를 걸고, 대추나무로 서까래를 걸어 으리으리한 누각을 짓게 했다. 다락의 네 귀에는 풍경을 달아놓고, 널찍하게 내성과 외성을 둘렀다. 그리고 문 밖에 60명, 문 안에 60명의 아기업개를 거느렸다. 한쪽 손에는 번성꽃을, 한쪽 손에는 환생꽃을 쥐고 생불왕으로 좌정한 명진국 딸은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며, 하루 만 명씩 잉태시켜 주고 또 해산시켜 주었다. 삼승할망과 구삼승할망 - 문화/역사 (jeju.go.kr) |
현실에서는
삼신상
태어난 아기가 무탈하게 크길 기원하며 차리는 상.
며느리는 방 안쪽에, 출가한 딸이 친정에서 해산할 때는 방문가에 미역, 쌀, 정화수 혹은 한지를 깔고 쌀, 미역, 가위, 실 돈을 놓은 삼신상을 차리며, 출산 직후 삼신상에 놓았던 미역과 쌀로 첫 국밥을 지어 산모에게 먹입니다.
보통 시어머니가 삼신상을 차리며 출산후 3, 7, 14, 21일째에 삼신상을 차리고 그 상의 밥과 국을 산모가 먹습니다.
수수팥떡
아이의 백일부터 매년 생일에 열살까지 삼신할미를 위한 수수팥떡을 지어 아이에게 먹입니다.
굿문화
삼신할매가 한이 맺히고 살이 끼고 부정 탄 민중들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보호해 주는 친밀한 존재로서 예전 가장 약한 존재인 아기와 배경이 없어 천시당하고 고통당하는 민중을 두루 돌보아주는 존재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창작 작품에서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삼신할매가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등장한다.
전설의 고향, 귀곡의문, 금수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메카드볼, 사장님은 투타임, 쌍갑포차, 여우누이, 울랄라 부부, 자취방 신선들, 헬퍼, 홍천기 등에서도 등장한다.
결론
삼신할머니는 한국 민속신앙에서 매우 중요하고 친근한 인물로, 출산과 육아와 관련하여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와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신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 신앙은 한국 민간신앙의 일부분으로서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깊은 믿음과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신할머니와 관련된 믿음과 신앙 행위들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